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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산,금성산(경북의성)...2009.03.08(일) 본문

* 일반산행/일반산행

비봉산,금성산(경북의성)...2009.03.08(일)

Sea fog 2009. 3. 9. 08:29

 

산행일자 : 2009.03.08(일)

날      씨 : 맑음

산행인원 : 30여명

산행코스 : 주차장-금성산성터-금성산(명당혈 ,530M-550봉-봉수대-노적봉 갈림길-노적봉능선-수정사

             -수정사계곡-수정사갈림길-비봉산(671m)-전망대능선-601봉-산불감시초소-주차장 (약 13km....4시간30분소요)

 

 산행지가 줄줄이 취소...

이곳 저곳을 찾다가 고향의 산 이름과 같은 곳으로 결정.

입구에 다다르자 떡하니 버티고있는 거대한 한봉우리...금성산

여기도 지역 산악회 두어팀뿐....한산하다.

 

금성산성터

 

초반의 짧은 오름이 만만찮다 

 

흔들(건들)바위...

다들 그냥 지나친다.왕복 180m 밖에 되질않는데...

일행을 뒤로 하고 옆길로 잠깐...흔들어도 끄떡도 않는다.

나중에 알았다..밑둥이 아닌 윗부분을 흔들어야 전체가 흔들린다는것을..,

 

 

주능을 잠깐 이탈해 노적봉으로...

한 일행분이 같이한다.

계속 진행해도 노적봉을 알리는 그 무엇도 없다.

호기심에 조금더,,,조금더...마지막 봉까지...결국 수정사로 내려온다

경내의 흔적을 담고 목을 축인후 다시 게곡길을 따라 내려왔던 주능으로 오른다.

마음이 약간 조급하다 ...시간내에 산행을 마무리 할 수있을지...군것질을 너무 과하게 한것같다

 

노적봉능선에서 바라본 주능...제일 좌측이 금성산, 다음이 550봉...

 

다시 오른 주능길...

 

조금 진행하다 급기야 쥐가 다리를 붙든다. 맨꽁지라 조급함 때문인가...

어쩔수없이 쉬엄쉬엄  비봉산까지  900m가 한없이 길다.

다행히 같이한 일행분...걱정되어 기다리고 계셨다

 

 

그래도 볼건 다 보고...

 

여인의턱 로프길(15m)....거의 직벽이다.

 

                   여인의턱에 붙은  남근석...

 

군것질한 노적봉능선

 

지나온 여인의턱...(머리 풀고 누운 여인의 모습이라는데....암벽이 턱부분이고..)

 

                  유독 많이 달린 솔방울....자그마한 몸체에..

 

601봉에서....

 

거대한 암반.....바로 아래 있는 저수지의 댐 역활을 하고 있는것같다

 

산행종료 20분전에 도착했지만 맨 마지막이다.

같이한분께 감사함을 전하고 산행을 마무리한다.

 

같이한 일행분....

령,재,치의 구분...산과 봉의 치이점...그외 여러가지...많은것을 말씀해주셨는데

알고 보니 백두대간 지도를 만드신분이란다.

지금은 다른 지도 제작을 위해 오신거라고...

유명하신 분과 함께한 산행을 추억으로 ....싸인을 ....

 

                      

 

                        

 

 

*노적봉설화

 

 적과 전투를 하던 장수가 산꼭대기에 식량이 넉넉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꾀를 내어서 적을 물리쳤다는 내용의 설화.

지략담에 속하며 전국적으로 널리 전승된다. 대표적인 것이 전라남도 목포시 대의동에 있는 노적봉전설이다.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李舜臣)이 이곳에 진을 치고 산꼭대기와 큰 바위를 짚과 섶으로 빙 둘러싸 식량 무더기로 위장하여

왜적으로 하여금 싸움을 포기하고 후퇴할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다는 것이다.
군량미가 산더미같이 쌓였다는 위장 전술로 싸우지도 않고 적을 물리쳤다는 이 설화에는

냇물 상류에서 횟가루를 풀어 물을 부옇게 만듦으로써 쌀뜨물로 위장하여 왜적이 겁을 먹고 물러나게 했다는

 쌀을 씻은 물 대목이 첨가되기도 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비봉산(飛鳳山)의 노적봉전설은

 삼한 시대에 소문국왕이 적에게 포위를 당해 식량이 떨어지자

짚으로 산봉우리를 덮어서 노적가리처럼 보이게 했다는 내용으로 목포 노적봉전설과 같다.

 

경기도 남양주시 덕소 건너편의 노적봉은 임진왜란 때 변협(邊協)이,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행주산성에는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이 같은 목적으로 노적봉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노적봉은 전쟁과 식량난이라는 관계에서 발생한 위장이거니와,

식수난(食水難)도 식량난에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것이므로 적으로 하여금 후퇴를 유도한 설화도 있다.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금전동 천생산성(天生山城)에 전하는 곽재우(郭再祐)의 일화가 그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설화는 왜적으로부터 국가를 지키려다가 포위를 당해 곤경에 빠진 장군에 대한 존경심과

승리에 대한 열망이 노적처럼 생긴 산봉우리와 연결되어 실제 전쟁과 관계없이 발생하기도 한다.

 유리한 조건에서의 승리는 당연한 것이지만 악조건 속에서 지혜로 승리한다는 것이 설화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지명총람 6·7-경북편-(한글학회, 1979), 嶺南의 傳說(柳增善, 螢雪出版社, 1971),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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