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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2구간(통리재-면산-석개재)...2016.11.19~20(토요무박) 본문

* 정맥 /낙동정맥(진행중단)

낙동정맥2구간(통리재-면산-석개재)...2016.11.19~20(토요무박)

Sea fog 2016. 11. 27. 10:53

 

 

 

 

 

 

산행일자  : 2016.11.19~20(토요무박) ( 봄 여름 가을 겨울 산악회)

산행위치 : 강원도 태백, 삼척,  경북 봉화

산행구간 : 통리재 -  태현사 - 고비덕재 - 백병산 - 토산령 - 구랄산 - 면산 - 석개재 (거리: 약20 km  소요시간:09시간05분)

날      씨 : 맑음

 

낙동정맥2구간(통리재-석개재)__20161120_0255[1].gpx

 

낙동 그 두번째길...

지난 구간 끝난 통리역이 아닌 조금 더 지난 통리재를 들머리로

03시 어둠을 뚫고 하루의 산행이 시작됩니다.

언제나 그랬듯 어둠속의 산길은 오로지 앞사람의 발자욱만 보고  따르게 됩니다.

태현사를 지나 면안등재 그리고 고비덕재를 지나 출발 2시간 남짓의 오름끝에  백병산에 다다릅니다.

 

솟아 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받으며 토산령에서의 식사후 오늘 하루의 고비인 면산으로...

된비알이 심한 봉우리의 이어짐... 한걸음 한걸음 옮기기가 너무나 버거운 멀기만 한 면산입니다.

토산령에서 부터 면산..약 1시간 50분이 걸려 면산 도착입니다.

간단한 산제를 지내고 석개재로...유난히도 산죽이 많은구간.

석개재로의 내림길도 제법 경사가 있어 만만찮습니다.

그렇게 쉼없는 발걸음은  무사무탈 또 다른 하루의 산행을 마무리해줍니다.

 

 

 

 

 

 

 

백병산 삼거리

 

 

 

 

 

 

 

 

 

 

 

 

 

 

 

 

 

 

 

 

 

면산

 

 

 

 

 

 

 

 

 

 

 

 

 

 

 

 

 

 

 

 

 

 

식사후 찾은 낙동정맥 발원지 황지연못에 들립니다.

 

- 황지연못 -

이 곳은 옛 신라와 가야의 문화를 꽃 피우며 이 겨례와 숨결을 같이 한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 연못은 옛날 황부자의 집터였는데

어느날 노승이 시주를 청하자 외양간을 치고 있던 인색한 황부자는

시주대신 두엄 한 가래를 퍼 주었다고 한다.

이를 본 며느리가 시주를 올리며 용서를 빌자 이 집은 운이 다 했으니 어떠한 일이 있어도

 뒤돌아보지 말고 따라오라는 말에 며느리는 노승을 따라가다가 뇌성벽력이 치는 소리에

 깜짝놀라 노승의 당부를 잊은 채 뒤돌아 보는 순간 

아기를 업은 며느리는 돌이 되어 버렸고 집터는 연못으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황지라는 지명의 유래도 뇌성벽력과 함께 황부자집 옛터가 연못으로 변했다는 전설에서 온 것이다.

 

 

 

 

중지(中池)...황부자의 방앗간터

 

황지(黃池)연못은 상지(上池),중지(中池),하지(下池) 3개의 못으로 나뉜다.

상지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수굴이 있어 1일 약 5,000톤의 물이 용출되며,

이 물은 황지천을 이루고, 낙동강과 합류하여 경상북도,경상남도 및 부산광역시를 거쳐 남해로 흐른다.

 

'동국여지승람' , '대동여지도' 등 옛 문헌에 낙동강의 근원지로 기록되어있다.

 

 

 

 

상지(上池)...황부자의 집터

 

황지(黃池)연못은 상지(上池),중지(中池),하지(下池) 3개의 못으로 나뉜다.

상지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수굴이 있어 1일 약 5,000톤의 물이 용출되며,

이 물은 황지천을 이루고, 낙동강과 합류하여 경상북도,경상남도 및 부산광역시를 거쳐 남해로 흐른다.

 

'동국여지승람' , '대동여지도' 등 옛 문헌에 낙동강의 근원지로 기록되어있다.

 

 

- 황지연못의 전설 -

 

황지3동 시가 중심부에 위치하며 둘레가 100m인 상지 ,50m인 중지, 30m인 하지로 된 3개의 못으로 나뉘며

상지 남측에 깊이를 잴수 없는 수굴이 있어 수원이 된다.

수량은 가뭄에도 장마에도 변함없는 1일 약 5,000톤이 용출되며, 수온 또한 상온 15도C를 유지하는 해발 700m

이 지역 주민들의 상수도 취수장으로 전국 최적의 오염되지 않은 상수원이다.

고지도를 비롯한 동국여지승람,택리지 등 옛 문헌에 의하면  낙동강의 발원지로서

옛 신라문화와 가야의 번영을 이룩하며 한 민족과 숨결을 함께한 젖줄 1300리 낙동강을 오늘도 쉼없이 흘려 보내는 것이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낙동강의 근원으로서 관아에서 제전을 두어 가물때는 기우제를 올렸다."

기록된 이 못엔 원래 황씨 성을 가진 황씨가의 옛터로서 주인 황씨는 많은 재산에 풍족하게 살았으나

 돈에 인색하기 짝이없는 수전노 노랭이 였다.

어느 봄날 화부자는 외양간에서 쇠똥을 쳐내고 있었는데 옷차림이 남루한 노승이 시주를 청했다.

황부자는 시주하기를 거절했으나 노승은 물러나지 않고 거듭 염불을 외며 시주를 청했다.

이에 그만 화가 치민 황부자는 쇠똥을 한가래 퍼서 시주바랑에 넣어주며 "이거나 받아가라"고 하였다.

노승은 조금도 노하지 않고 공손히 인사하고 돌아가는데 마침 아기를 업고 방아를 찧던 며느리가 이를 보고

부끄러히 여겨 시아버지 몰래자기가 찧은 쌀한바지를 퍼내어 노승에게 시주해 올리며 시아버지의 죄를 용서 빌었으나

노승은 며느리에게 말하기를

"이 집은 운이 다하였으니 아기를 업고 속히 소승의 뒤를 따라 오시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절대 뒤를 돌아 보지마시오"고 일러 주었다.

이에 며느리는 곧 집을 나서 송이재를 넘어 구시리(지금의 도계읍)산마루에 이르렀을때

뇌성벽력과 땅이 갈라지는듯한 소리에 깜짝 놀라 노승의 당부를 잊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 버렸고 황부자의 집은 땅밑으로 꺼져내려가 간곳없고 집터는 큰 연못으로 변하였다.

지금도 삼척군 도계읍 구사리 산마루에는 황지쪽을 뒤돌아 보며 아기를 업은채 서있는 돌미륵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아프게하며 ,함께 따라간 강아지도 돌이 되어 그 앞에 있다.

또한 그때 집터는 지금의 상지이고 ,방아간 자리가 중지,변소터가 하지로 변했다하며

뇌성벽력과 함께 변해버린 연못(집터)에서 유래된 지명이 황지인 것이다.

 

이 여인상은 도계읍 구사리(미인폭포 동쪽 2km지점)능선에 위치한 황씨의 며느리 미륵상을 모방 조작하여

 태백시 승격 10주년을 기념하여 옛터인 이곳에 세우다

 

 

 

 

 

 

 

 

 

낙동정맥2구간(통리재-석개재)__20161120_0255[1].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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